more..
3. AD2720 1018 'Return'
서기 2720년 10월 28일 ――― 인류문명은 멸망했다.
살아남은 것은 외우주 순항을 마치고 돌아오던 나 한세현과 동기생 하멜 브라우닝, 취엔 아이렌, 그리고 함장인 로베르트 뮐러――― 이 네 사람만이, 이 우주에 살아남은 유일한 인류.
아니, ‘인간’이라는 항목을 제외하면, 자율기동보조기계―――쉽게 말하면 우수한 AI를 가지고 있는 조수 로봇 K-2i, 통칭 케이도 포함될지 모르겠다.
시작은 외우주 순항 중 지구로부터 발신된 정보였다. 지각의 심층을 조사하는 발굴 작업 중, 이상한 정방형 큐브와 함께 어떠한 고철 덩어리가 발견된 것이다. 문제는 그 고철덩어리의 존재. 인간의 형상을 띄고 있었던 고철덩어리를 조사한 결과…… 그것은 케이와 똑같은 구조를 가진, 로봇의 잔해였다고 추측되었다.
……어째서 그렇게까지 자세하게 조사했으면서 추측이라는 말을 덧붙였는가 하면, 발견된 곳의 지각층이 무려 기원전 10만 년 이상 전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같이 발굴된 정체불명의 큐브 역시 해석불능. 외부의 어떠한 충격에 대해서도 반응하지 않고, 어떠한 조사 기구를 써도 만들어진 소재나 내부구조 등을 파악할 수 없었다.
이 로봇의 잔해와 해석불가능의 큐브는 한동안 지구에서 화재거리가 되었고, 심지어 외우주를 순행중인 우리들에게까지 흘러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그 정보를 입수한 후 약 한 달 후인 2720년 10월 28일. 우리는 지구를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의 거리까지 왔을 때, 갑자기 불특정다수전파를 수신했다. 그것은 경악할 만한 내용이었다. 이제까지 조사하던 큐브가 갑자기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해 연구시설과 함께 반경 몇 천 킬로미터를 초토화시키고, 그곳을 조사하러 보냈던 전투기 부대와 조사반들이 정체불명의 적들에 의해 전멸. 게다가 그 수는 차츰 증가하여 도저히 대항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정체불명의 적들은 인간과 인간이 이룩해 놓은 문명을 초토화시키며 점점 세력을 넓혀갔고, 한 달 만에 지구의 주인으로 군림하던 인류는 10만 정도로 줄어버리고 말았다.
그리하여 인류가 선택한 것은 지구를 탈출해 다른 행성으로의 이주. 어째서인지 모르지만 인류는 다른 행성으로 갈 수 있을 만큼의 기술을 축척해놓았으면서도 그곳에 거주공간을 만들 생각을 하지 않은 채 지구 안에 틀어박히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제 와서 이주할 곳을 찾으려는 것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라고 비난할 틈은 없었다.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짓도 할 수 없었다. 인간의 자기보신본능을 포기시키면서까지 하나로 뭉치게 만든 존재―――그것이, 인류의 적이었던 것이다.
우리가 전파를 수신했을 때는 이미 행성이주모함은 건조가 완료된 상태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이대로 지구를 탈출하는 건가하고 생각했지만―――
그 순간, 지구가 새하얀 빛으로 뒤덮였다.
……지구 탈출 예정이었던 날짜를 하루 남긴 채, 모든 신호가 두절.
인류는 결국 마지막까지 지구를 벗어나지 못한 채, 모두 죽고 말았다.
순항선에 타고 있던 우리들은 아연함을 감추지 못했다.
4. AD2721 0503 'Desolation'
서기 2721년 5월 3일. 우리들은 고독한 싸움을 강요당하고 있었다.
지구로부터 모든 신호가 두절된 것을 안 우리들은, 서둘러 지구로 향하였다. 아직 남아있을 적에 대한 위험은 알고 있지만, 그렇다 해도 살아남은 사람이 있을 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디서도 사람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 마치 이 지구에 인간이라는 종족은 없었다는 듯이.
특히 이상했던 것은, 인류 이외의 생물은 전혀 손상을 입지 않은 듯이 보였다는 점이다. 물론 인원이나 기자재의 부족으로 자세하게 조사한 것은 아니나―――인류 문명의 대표라고 할 수 있을 빌딩이나 가옥 등은 전괴되었으면서도 그 도시 바로 근처에 펼쳐져 있는 숲이나 산, 자연 경관 등은 어떠한 손상도 입지 않은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상한 점은 인간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살아있는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인간의 사체’조차 찾을 수 없었다. 미국의 워싱턴에 있던 우주통합사령본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참혹하게 부서진 건물이나 무기, 기계류 등은 어디서도 볼 수 있었지만…… 오직 인간만이 보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손톱만큼도.
그렇게 지구에 내려와 조사를 진행하고 있을 때 우리들은 이 일의 원흉을 만날 수 있었다.
그것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기묘한 ‘개체’였다.
생물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기계적이었고, 기계나 무기물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이질적이었다.
반경 수 킬로 안에 포착된 적의 숫자만 해도 이미 수 천을 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숫자는 언제까지고 꾸역꾸역 늘어나기만 했다.
우리들 사관 세 명은 로베르트 함장과 케이의 서포트를 받으며 전투기를 몰며 싸움을 했다. 아무리 정비과정이나 조정 작업을 기계로 대행시킬 수 있다 하여도, 인간에겐 피로라는 것이 있었고, 또한 물자에는 한계라는 것이 있었다.
……우리들은 그런 가혹한 환경에서 언제 끝날지 모르고, 정체가 누군지도 모르는 적과 함께 싸워야했던 것이다.
5. AD2724 1018 ‘Insanity’
인류가 멸망한지 정확히 5년이 지났다.
그리고 우리들 역시 5년 동안 기약 없는 싸움을 계속해왔다.
하지만 결국 한계를 맞이한 것 같다. 부족한 물자를 매우기 위해 적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지구의 이곳저곳을 뒤져야 했고, 그러는 와중 또다시 적들과의 교전.
이런 짓을, 무려 5년 동안이나 반복했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차츰 이성을 잃어갔다.
첫 번째로 이성을 잃어버린 것은 로베르트 함장이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싸움에 대한 초조감, 그리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인류의 리더라는 부담감, 그리고 모두 동기생인 우리에 비해 연장자라는 입장에서 오는 고독감.
그리고 그 결과는 아이렌을 강간하려는 것으로 나타났다.
누적된 전투 피로에 한숨을 쉬며 방으로 돌아가던 내가 희미하게 들려오던 아이렌의 비명소리를 듣고 곧바로 달려갔더니, 로베르트 함장이 아이렌을 위에서 찍어누르며 옷을 찢어발기고 있었던 것이다.
나 역시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니, 아니었을 것이다.
처음엔 힘으로 뜯어 말리려던 나였지만, 이성을 잃은 함장의 완력은 중년의 그것이 아니었다. 뭣보다 함장 역시 몇 년 전까진 직접 현역으로 뛰던 파일럿이었다. 도저히 힘으로 그를 제지할 수 없음을 깨달은 나는――――――주저없이, 그를 총으로 쏘았다.
찢어진 옷가지를 부둥켜안으며 부들부들 떠는 아이렌과 그 옆에서 피웅덩이를 만들며 쓰러져 있는 로베르트 함장. 그리고 몇 년 동안 함께 위기를 해쳐오며 동거동락해오던 상관이자 동료 한 명을 죽이고서도 차갑게 마음이 가라앉아 있는 나.
그것은 너무나도 비현실적이면서도, 너무나도 현실적이라 나의 뇌는 이해하는 것을 멈추고 있었다.
그리고 이 일을 알게 된 하멜은 격렬하게 나와 충돌하였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이제 몇 남지 않은 인류를 죽여서는 안 되었다고 되뇌는 하멜. 그렇다고 해서 그대로 방관하고 있어야 했냐는 나.
아이렌은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방에 틀어박혀 있었다.
결국 하멜과 나는 극도로 예민해진 상태에서 주먹을 주고받았고, 그렇게 화해하지 못한 채――――――
6. AD2725 0722 ‘――――――’
하멜이, 전사했다.
7. AD2726 0353 ‘Conclusion'
내가 한 번 이성을 잃을 뻔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살아있는 것은 아이렌과 케이라는 존재 덕분이다.
아이렌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은 나의 거미줄과도 같은 이성을 간신히 유지시켜주었고, 피드백 기능의 리미트를 풀어버린 케이는 나날이 지나갈수록 인간과 다름없는 사고패턴을 보여주었다. 소녀와도 같은 형상을 가지고 있는, 어느새 동생과도 같은 입장이 된 케이와, 어느 새인가 가까워진 사이가 된 아이렌.
이 고독한 우주에서 나를 지탱시켜주는 유일한 요소였다.
이제까지 기나긴 시간동안 싸워오면서, 한 가지 알게 된 것이 있다. 그것은 적들이 큐브가 발견된 중국의 카슈가르 지방에서 계속해서 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끝이 없는 듯이 보이는 적의 수. 아니, 아마도 그 큐브 자체가 이 적들을 만들어내고 있으리라. 큐브 자체를 없애지 않는 이상 우리의 미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
그렇게 추측하여 카슈가르로 향한 우리들이었지만 적들의 저항은 과연 만만치 않았다. 무엇보다 밀도가 다른 것이다. 하나하나의 성능은 그리 뛰어나지 않지만 이미 그 수가 달랐다. 몇 년간 사선을 건너오면서 실력을 다져온 나와 아이렌이라 하더라도 카슈가르를 중심으로 형성되어있는 적들의 방어선을 뚫기는 무리였다.
그 결론을 얻은 것은 이곳에 도착한 뒤로 이미 1년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8. AD2727 0119 'Breaking'
큐브를 없애지 않는 한 우리들의 살 방법은 없었다.
애초에 물자가 많이 남아있었고 로베르트 함장과 하멜이 살아있을 시절에도 지구를 떠나서는 살 방도가 없었던 우리들이었다. 이제까지 인간이 살 수 있는 환경을 가진 행성을 찾지 못했던 인류이다. 이제 와서 소수인 우리가 찾아봐야 찾을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래서 우리들은 항쟁을 시작했다. 정체불명의 적들로부터 지구를 탈환하기 위한 투쟁.
하지만 그것도 이제 슬슬 한계를 맞이하기 시작했다. 로베르트 함장과 하멜은 죽고, 나와 아이렌은 지쳐가기 시작했다. 적들의 눈을 피해 긁어모아오던 물자들도 슬슬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고, 무엇보다 이제까지 우리들의 행동에 대응만 하던 적들이 이제 우리들에게 직접 공격을 가해오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적의 근거지 근처에 너무 오랫동안 있었던 모양이다.
우리들의 거주지나 다름없던 모함은 이제 슬슬 수명을 다하고 있었다. 원채 낡기도 한데다 요 근래 수없이 적들의 공격을 받으며 그 손실이 컸고, 그 손실을 보수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도 적들의 방어선은 뚫지 못한 상태.
그래서 우리들은――――――최후의 수단을 쓰기로 하였다.
바로 모함 자체를 적의 방어선에 투하하여, 모함의 타키온 엔진을 폭발시켜 광범위한 피해를 가해 방어선을 뚫고자 한 것이다. 케이의 계산에 의하면, 적어도 반경 300km 정도는 적 방어선의 완벽한 소멸, 반경 1000km이상으로 적의 방어선에 막대한 타격을 가할 수 있다고 한다.
이제까지 우리들의 근본지이던 모함을 버리는 것은 주저되었으나, 어차피 뒤가 없었다.
그것은 아이렌도, 정밀한 정보수집과 그에 따른 산출결과를 낼 수 있는 케이 역시 동의했다.
다만 문제는 케이였다. 전투기에 같이 태울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모함에 남게 할 수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케이가 말했다.
“괜찮습니다. 어차피 모함은 적의 방어선 근처까지 진로를 유지해야 하고, 그것을 조종할 이는 제가 제격이니까요.
물론 기능정지를 솔선할 생각은 없습니다. 이 모함의 관제중추구는 분리가 가능하니, 진로를 고정한 뒤 탈출하면 무사할거에요.”
그렇게 말하고 케이는 몇 년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인간적으로, 마치 수줍은 듯이 말했다.
“나중에 구하러 와주셔야 해요.”
물론. 나도 아이렌도 이곳에서 죽을 생각은 없다.
차가울 터인데도 어쩐지 따뜻하게 느껴지는 아이렌의 머리를 쓰다듬고, 우리들은 모함을 적의 방어선에 유도하고 엔진을 폭주시키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
9. AD2727 0121 'Flash'
모함을 이용한 적의 방어선 돌파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천 km 이상이라 해도 결국 한 부분뿐이긴 하지만, 방어선은 매우 크게 흐트러졌고, 나와 아이렌은 그곳을 향해 전투기로 돌격했다.
이제 우리들에게 물러설 곳은 없다. 오직 전진 뿐.
……
10. AD2727 ???? 'Cube'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방어선을 뚫었다 하더라도 중앙의 수비 역시 엄청났고, 그런 방어망을 나와 아이렌은 억지로라도 돌파해야 했다. 한 순간도 쉴 틈 없는 격렬한 전투. 적들의 총탄인지 광선인지 알 수 없는 공격이 기체에 스치기도 수 만 번, 격추될 위험 역시 셀 수 없이 많았다.
하지만 나와 아이렌은 결국 도착할 수 있었다. 적들의 근원지, 큐브에.
그것은 매우 커다란 정방형의 물체였다. 마치 맥박을 하듯, 새겨진 문양으로부터 빛이 강해졌다 약해졌다를 반복하고 있었고, 그런 큐브를 우러러도 보듯 이제까지 격렬하게 저항해 오던 적들이 오히려 큐브에 가까이 접근하자 교전을 중지하는 듯인 의사까지 보였다.
역시 저 큐브는 적들에게 있어 중요한 것임에 틀림없으리라.
큐브를 자세히 관찰하려던 순간, 이상한 느낌에 휩싸였다.
매우 이상하게도, 저 큐브를 보는 순간 저 큐브에 대한 적의가 모두 사라진 것이다.
그것은 아이렌도 마찬가지인 모양으로, 우리들은 매우 곤혹스러웠다.
심지어 인류를 멸망시킨 것마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려 하는 우리들이 있었다.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미 이성을 거의 모두 잃어가고 있었던 우리들은 그 ‘본능’을 무시할 수 있었다. ――――――즉 큐브를 향해 공격을 감행한 것이다.
순간 큐브 역시 대응을 해 왔다. 이제까지의 적들과는 전혀 다른 공격을 쏟아부어오는 큐브.
큐브는 최초에 둥그런 구체 3개를 주위에 떠돌아다니게 하며, 그 구체들과 어떤 자력 비슷한 것으로 속박하며 이쪽에 공격을 감행해 왔다. 수 없이 쏟아지는 빛덩이들과, 알 수 없는 충격파.
하지만 사선을 넘나들며 무수한 전장을 거쳐온 우리들의 상대는 되지 않았고, 그것을 깨달은 큐브는 다시 한 번 변형을 꾀했다.
그것은 놀랍게도――――――도마뱀의 모양을 하고 있었다. 아니, 그 크기나 형태를 봐선 도마뱀이라기 보다 공룡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 공룡형태의 큐브는 여전히 가혹한 공격을 해왔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그 적을 저지하는 것에 성공했다.
큐브는 다시금 변형을 시도했다. 공룡 다음은 새. 새 다음은 사자를 연상시키는 네발짐승.
……도대체 큐브는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그리고 그 네발 짐승 형태의 큐브를 격파한 우리들은 경악을 감출 수 없었다.
큐브는 다음으로 마치 거대한 인간을 떠올리게 하는 모습으로 변형했던 것이다.
주위 공간 자체도 이상해져 있었다.
마치 공간 자체가 일그러진 듯한, 지구였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지구가 아니었다. 마치 밤 하늘을 손으로 구겨서 펼쳐놓은 듯한, 생명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이공간.
그곳에서 인간형태의 큐브가 거대한 손과 발을 흔들어 우리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며칠째인지 모를 가혹한 싸움 탓이었으리라.
나는 한 순간 집중력을 잃었고, 그 후 곧바로 적의 광선이 내가 있는 곳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내가 그것을 깨닫고 피하려고 했을 때는 이미 광선은 내 이동경로에 있었다.
죽음을 각오한 순간―――격렬한 충격과 함께 의외로 적은 손상만이 모니터에 표시되어 있었다.
그것은 아이렌이, 내 기체에 동체를 부딪쳐 적의 광선궤도에서 빗겨냈기 때문이다.
그 댓가는, 아이렌의 목숨이었다.
아이렌의 기체 뒷부분은 완전히 사라져 있었고, 비행기능을 잃으며 추락하는 아이렌은 내 시선과 마주치는 순간 생긋 미소를 지었고…… 뒤 이어 닥쳐온 광선에 의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난, 그 순간 실낱같이 이어져있던 이성을 잃었다.
?. ??????
내가 정신을 차린 것은, 일그러진 공간에서 어느새 지구의 위성궤도 위에 있을 때였다.
이미 나의 기체는 모든 탄약과 에너지 병기를 소모하고, 겨우겨우 비행이 가능할 정도의 상태였다. 그에 비해 눈앞에 있는 큐브는 건재한 듯이 보였다.
――――――아니, 아니다. 저 큐브 역시, 한계를 맞이하고 있었다.
이제까지 맥박을 치듯 발광하던 빛 자체가 현저하게 약해져있었던 것이다.
큐브는 마지막 발악이라는 듯이, 이제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의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심지어 나와 우리 동료들이 상대해 왔던 적들을 생산하기까지 시작했다.
나 역시 한계였다. 체력적으로도, 자원적으로도, 그리고 정신적으로도.
이미 이 싸움은 큐브와 나 어느 쪽이 먼저 포기하냐로 승부가 갈리는 양상이었다.
모든 대항무기를 잃은 나는 오로지 회피에 전념했다. 전익에 스치는 적의 광선. 기체 밑바닥에 처박히는 적의 유탄. 적들 역시 생존을 포기했는지 통상의 공격뿐만 아니라 자기 동료들의 몸체를 직접 부딪쳐 온다든가 유폭시킨다든가 하여 나를 떨어트리려 하였다.
오직 적의 공격을 보고, 피하고, 보고, 피하고.
전투 중에 이상한 능력이 개화라도 했는지, 이제 기체가 감지할 수 없는, 시야가 포착할 수 없는 타이밍과 각도의 공격까지 느껴지는 듯했다. 조종간을 강하게 움켜쥔 내 손은 이미 짓물러 피고름이 흐르고 있었고, 적의 유탄이 부딪친 충격으로 기체 내부에서 흩날리는 금속파편등으로 내 몸 역시 만신창이었다. 조금이라도 정신을 흩트리면 온 몸에서 힘이 빠져나갈 것 같았다. 팔은 부들부들 떨렸고, 손은 내 손에서 흐르는 피고름 때문에 미끄러웠고, 이마에서 흐르는 피는 내 시야를 계속 가렸다.
하지만 난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체력이 모두 떨어진 것은 큐브 쪽이었다.
큐브가 모든 빛을 잃고, 대기권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나는 저 정체불명의 적에게 승리한 것이다!!
나는 승리감과 허탈감에 도취되어 한 순간 집중력을 흐트렸고,
때문에 옆에서 닥쳐오는 적들의 파편이 스페이스 데브리가 되어 에너지가 모두 소모되어 감지능력이 떨어진 전투기의 동력부에 부딪쳐 오는 것을 피하지 못했다.
결과는 비행불능. 조작불능. 지구의 인력…… 회피불능.
나는, 대기권으로 추락하면서 점점 상승하는 기온을 몸으로 느끼면서 한 가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인류 멸망의 날에 함께 돌아가신 부모님도, 몇 년 동안 서로 목숨을 지탱해왔던 로베르트 함장이나 하멜도, 연인이었던 아이렌도 아니었다.
그것은 단 한 가지의 약속.
‘미안, 케이……. 약속, 지키지, 못할 것 같, 아…….’
새빨갛게 물든 시야가, 점점 새카맣게 변해간다.
그 와중에 뺨에 느껴지는 물기가 땀인지 피인지, 혹은 다른 무엇인지는, 결국 알 수 없었다.
?. ??????
……────
I hope to be continue……
Because SHE WAS waiting for you forever.
댓글을 달아 주세요
...브라우닝이라는 성 보고, OG 떠올려버렸습니...